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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개원가 '1차 의료가 흔들린다'(상)
위기의 개원가 '1차 의료가 흔들린다'(상)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8.10.10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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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수가에 환자 줄어 '오늘도 한숨만'
휴·폐업 속출…전공 포기한 채 비만·미용 눈 돌려

"월급날이 가까워오면 '이번 달에는 어떻게 직원 월급을 줘야 하나'는 생각에 밤잠도 제대로 못 잡니다. 지난 달에는 이리저리 긁어서 직원들 월급 맞춰주고 나니 50만원이 남데요. 오라는 곳만 있으면 당장 때려 치고 월급쟁이를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경기도에서 3년째 이비인후과의원을 개원하고 있는 A원장은 월급날만 돌아오면 한숨부터 나온다고 했다. 얼마전 열린 동창 모임도 회비를 내는 문제 때문에 '집안 일이 있다'는 핑계로 빠졌다. 이리저리 빚을 내서 개원은 했지만 이자 갚고 직원들 월급주고 나면 집에 갖고 들어갈 돈은 몇 푼 되질 않는다. A원장은 요즘 개원을 접고 병원 봉직의사로 돌아가야 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서울 강북지역에 개원을 하고 있는 B원장은 비만·노화·미용 관련 심포지엄이나 세미나에 자주 참석하고 있다.

"앉아서 망하느니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이곳저곳 눈길을 돌려보지만 그쪽도 이미 포화상태라고 합니다. 지난 주에는 옆 건물에 같은 진료과 간판이 내걸렸는데 엄청 신경이 쓰이죠. 매년 3500명 씩 새로운 의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B원장은 평일엔 8시까지, 토요일에도 오후 6시까지 근무시간을 늘리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이마저 여의치 않으면 전문의 간판을 내리고 비만이나 미용 등 일반진료로 전환할 생각도 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 의원급 의료기관에서는 폐업을 하고 일반과 간판을 바꿔달거나 봉직의사로 유턴하는 의사들이 비일비재한 실정이다.

서울시청과 각 보건소가 집계한 서울시 의원급 의료기관의 폐원율은 2004년 7.8%, 2005년 6.1%, 2006년 6% 등으로 파악됐다. 같은 기간 개원율은 6.9%, 7.6%, 8.2%로 집계돼 신규 개원과 함께 폐업을 하고 다시 개원을 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종합병원 휴·폐업률이 1%대의 낮은 수준임을 감안하면 의원급 의료기관의 높은 개·폐원율은 상대적으로 동네의원의 경영환경이 악화일로에 있음을 반증한다. 동네병원도 예외는 아니다. 중소병원협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중소병원(30~499병상)의 휴·폐업률은 8%로 5.6%를 기록했던 2006년 보다 2.4%포인트 높아졌다. 병상 규모별로는 100병상 미만이 11.9%로 가장 높았고, 100∼199병상이 6.4%, 200∼299병상 4.3%, 300병상 이상 1.2%다. 종별로는 요양병원이 9.6%로 가장 높았고, 일반병원은 9.1%를 보였다. 반면, 종합병원 휴·폐업률은 1%에 불과했다.

경영악화 시달리는 동네의원 휴·폐업 속출

전철수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가 의료정책포럼 최근호에서 발표한 '서울시 의원급 의료기관의 개·폐원 현황 분석' 자료에서도 의원급 의료기관의 폐원문제는 심각하다. 2008년 1/4분기 서울시내 의원급 의료기관 가운데 일반과의 폐원율은 10.4%에 달했다. 그나마 개원 여건이 낫다는 서울에서 일반과 의원 10 곳 중 1곳은 망한다는 얘기다. 폐원율 2위는 성형외과, 3위는 가정의학과 4위는 산부인과로 집계됐다. 개원율이 가장 낮은 과는 산부인과가 차지했다.

전철수 부회장은 "지속적인 저출산의 영향으로 산부인과 개원율은 전체 과목 중 꼴찌를 기록했다"며 "1차 산부인과 의원의 붕괴는 고스란히 국민의 피해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산부인과 개원가는 낮은 수가와 의료사고에 대한 불안 그리고 저출산이라는 직격탄을 맞으면서 잇따라 분만실을 폐쇄하거나 축소하고 있다. 실제 전국 3574곳 산부인과 요양기관 중 30.1%(1089곳) 만이 분만실과 신생아실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무려 70% 가까운 산부인과가 분만실을 폐쇄하면서 산모들이 분만실을 찾아 헤매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나라당 손숙미 의원은 "임산부들이 응급분만시에 분만할 병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의료사각지대 해소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동네 산부인과 폐쇄 분만실이 사라진다

지역사회 1차의료를 담당하는 동네의원이 낮은 의료수가와 규제에 몸살을 앓으면서 간판을 바꿔달거나 진료시간을 늘이는 등 나름의 경영개선책이 총동원 되고 있다.

2008년 2/4분기 5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의 주당 총근로시간은 39.2시간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0.7시간 보다 주당 1.5시간(-3.7%)이 감소했다.

의료정책연구소가 조사한 의사들의 근로시간은 주당 평균 56시간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주 5일제 근무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98.5%의 개원의들이 토요일 진료를 하고 있고, 12.5%는 일요일에도 진료한다고 응답했다. <의협신문>이 2007년 조사한 의사들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50시간 이하가 47%였고, 51∼60시간 31.8%, 61∼70시간 11.2%, 71시간 이상도 9%에 달했다. 개원의들의 근무시간은 경영이 악화될수록 야간진료·휴일진료 등을 감수하며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경향으로 보이고 있다. 경영위기의 돌파구를 과로와 혹사로 감내하고 있는 셈이다.

개원가에서 경영악화 때문에 전문의자격을 갖고 있으면서도 전문의 간판을 내걸지 않은 채 일반진료를 하는 '전문과목미표시전문의'는 2008년 7월 현재 2만 6444명 가운데 17.4%(4595명)에 달했다. 전문과목을 표시하지 않은 채 영역을 넘나드는 전문영역 파괴현상은 2006년 16.4%, 2007년 16.9%에 이어 해마다 조금씩 상승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의협신문>이 지난해 3월 21일 창간특집을 맞아 전회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통해서도 증명됐다. '경영을 위해 전공과목과 다른 특화된 진료를 하고 있냐?'는 질문에 17%의 회원이 '전공과목과 다른 진료를 하고 있다'고 응답한 결과와 일치하고 있다.

위기 벗어나려 근무시간 늘리고 전공도 바꿔

오랜 기간 학습과 수련을 통해 취득한 전문의 자격증을 버리고 다른 진료과에 눈을 돌리는 현상은 사회적으로 낭비가 아닐 수 없다. 경영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다른 곳에 눈을 돌리는 현상은 개원가 뿐 아니라 전공의 수련과정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어렵고, 힘들고, 제대로 수가 보상을 받지 못하는 소위 3D과의 경우 중도에 수련을 포기하거나 1년을 쉬고 다른 과로 전공을 바꾸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전공의 확보율이 50%대 이하인 흉부외과·산부인과·결핵과 등의 경우 중도포기율마저 높아 결핵과는 절반 가량이, 흉부외과·산업의학과 등은 5명 중 1명이 중도에 전공을 포기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나라당 안홍준 의원은 지난 6일 열린 보건복지가족부 국정감사에서 "전공의 수련기피 현상은 고도의 의료행위에 대한 기술료가 현실화되지 않아 전공의를 지원할 때 힘들고 위험부담이 있는 과를 기피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안 의원을 비롯한 여야 국회의원들은 힘들고 위험한 수술에 대한 비용을 인정해 주고, 의료수가체계를 현실화 해야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정부의 대책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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