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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량 큰 며느리에게서 얻은 교훈

도량 큰 며느리에게서 얻은 교훈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9.04.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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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하(중앙대병원 가정의학과 진료조교수)
어느 큰 부잣집에서 재산을 잘 관리해 줄 수 있는 며느리를 구하기 위해 며느리 되기를 자청하는 처녀들에게 따로 살림집을 내어 주고 일정량의 양식을 주어 한 달을 살게 했다.

많은 처녀들이 재산을 탐내어 지원하였으나 정해진 양식은 한 달로 나누어 먹기에 터무니 없이 적은 양이어서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번번이 물러났다.

그때 마을의 한 처녀가 자정하고 들어와 한 달치 양식으로 먼저 배불리 밥을 지어 먹고는 나머지 쌀로 떡을 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고루 돌렸다.

이후 처녀는 하녀에게 마을에 삯바느질 거리가 있으면 모두 거두어 오라고 했고, 떡으로 인심을 얻은 처녀는 바느질 솜씨로 한 달 내내 배불리 먹고도 남을 정도의 양식을 모을 수 있었다. 결국 부잣집에서는 크게 만족했고, 처녀는 며느리가 되어 더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현재 우리 의료계는 선택의 여지 없이 내·외부적으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중간에 포기하고 물러난 여러 처녀들처럼 일정한 양식을 쪼개서 근근히 버티다가 좌절할 수도 있고, 결국 며느리가 된 처녀처럼 넓은 도량으로 블루오션을 개척해 파이를 키울 수도 있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 영역이 아니라고 여기는 생약과 한약도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 우울증이나 갱년기 증상에 성요한풀이 생약제제로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당뇨병 치료제인 메트포르민은 중세 유럽에 사용했던 약용식물인 Galega officinalis에서 기원했고, 간질환 치료제로 사용되는 레가론은 Milk thistle이라는 엉겅퀴에서 추출한 것이며, 위장질환에 사용되는 스티렌은 Artemisia asiatica라는 쑥의 추출물이다.

대한약전과 약사법 등의 정의를 보면 생약이 곧 한약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한약이 생약의 일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식약청 등 관련기관들은 생약이 곧 한약이라고 간주하고 있고, 의사들 또한 의사가 관여할 부분이 아니라는 좁은 시각을 갖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꼭 생약과 한약에 대한 사례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우리 나름대로 좁은 틀을 정해놓고 안에서 생존경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호랑이 없는 굴에선 여우가 왕이듯 의사들이 내 영역이 아니라고 방치해 놓은 황무지에서 자칭 전문가들이 행세를 하고 있다. 버려진 황무지에도 가치있는 광물이 묻혀 있을 수도 있고, 물을 대 논밭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현대 서양의학만이 의사들의 영역이라고 한정하지 말고 열린 시각으로 전통의학 및 보완의학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 안전하고 효과가 있다고 여겨지면 적극적으로 연구하며 의견을 개진하고,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이라면 이 또한 명백하게 밝혀 국민의 건강과 안전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을 막을 필요가 있다. 

도량이 크고 솜씨도 좋을 뿐만 아니라 매우 진취적인 생각을 가진 처녀처럼 이제 우리 의사들도 주어진 조건 안에서 그것에 맞추어 참고 견디어 가는 것이 아니라, 상황의 제약을 적극적으로 뛰어넘어 보다 실질적인 방향으로 전환시킬 줄 아는 전문가가 되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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