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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화에 따른 의료왜곡과 환자고통 외면 말라"

"규격화에 따른 의료왜곡과 환자고통 외면 말라"

  • 최승원 기자 choisw@kma.org
  • 승인 2009.08.06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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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 6일 '성모병원 환불 판결 부당' 대법원장에 호소

대한의사협회가 가톨릭대 성모병원의 임의비급여 진료비 환불처분이 정당하다는 법원 판결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입장을 호소문에 담아 6일 대법원장에게 전달했다.

서울행정법원은 7월 23일 성모병원이 심사평가원을 상대로 한 '임의비급여 진료비 환급 처분 취소 소송'에 대해 심평원의 환불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한 바 있다.

의협은 "의료에 미칠 파장과 그로 인해 빚어질 의료의 왜곡 및 환자의 고통을 우려한다"며 "우리나라 의료의 본질적인 문제는 규격화할 수 없는 의료를 규격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험자인 국가가 급여만이 아니라 비급여까지 규정함으로써 의료를 왜곡하고 있다"며 "불합리한 제도에 따른 의료의 왜곡과 환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 것"도 호소했다.

의협은 같은 날 '대법원장에게 보낸 호소문'을 발췌해 발표했다. 

<대법원장에게 보낸 호소문 발췌 발표문>

재판부가 "요양기관이 요양급여기준을 초과하거나 벗어나 공단에게 청구할 수 없는 비용을 환자 측에 부담시켜서는 안 되고, 그 치료행위가 위독한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경우라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라고 한데 대해

판결의 취지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위독한 생명을 구하기 위한 것이라 해도 급여기준을 초과하거나 벗어나는 치료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건지, 아니면 위독한 생명을 구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 치료행위를 하되 환자에게 비용을 부담시켜선 안 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만일 전자라면, 이는 의사로 하여금 죽어가는 환자를 보고도 최선의 진료를 다해 환자를 살려내서는 안 되며, 오로지 급여기준 내에서만 치료하고 환자가 살든 죽든 상관하지 말라는 의미가 된다. 이는 최선의 진료를 의사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는 의료법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인륜에 어긋난다. 법원이 이같은 취지로 판결했을 리 없다.

법원이 국민 생명을 경시할 리 없기 때문이다. 법원은 다른 사안의 경우 의사가 최선의 진료를 다 했는지 여부부터 따진다. 그렇다면 이번 판결의 취지는 최선의 진료를 다하되 급여기준을 초과하거나 벗어날 경우 환자에게 비용을 청구하지 말라는 의미라고 판단된다. 그럼 요양기관은 누구에게 비용을 청구해야 한단 말인가?

재판부가 "건강보험제도는 국민으로 하여금 질병 등에 대해 적정한 비용으로 합리적이고 적정한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며 법이 마련한 요양급여기준을 초과하거나 벗어난 치료비용을 환자 측에게 부담하게 하는 것은 건강보험제도의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다"라고 한 데 대해

'합리적이고 적정한 진료'가 의료법이 규정한 '최선의 진료'인지, 아니면 국민건강보험법이 규정한 '비용효과적인' 진료인지 알 수 없다. 이번 판결이 급여기준을 중시한 것이라는 점에 비춰 보면 비용효과적인 진료를 뜻하는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 짐작이 맞다면 국민의 건강과 생명보다 돈이 우선돼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환자의 고통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

백혈병으로 성모병원에 입원한 한 환자의 호소 사례 : "보건복지부 장관님. 백혈병 환자는 하루하루를 살얼음판과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중략>골수검사시 바늘도 보험혜택을 주시어 고통스럽지 않은 신형 골수검사바늘로 검사를 받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제도를 준수하기 위하여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고통만이 가득한 골수검사바늘로 (검사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보험재정이 문제된다면 보험적용 결정시까지 비급여로 사용할 수 있도록 승인해 주시기를 간곡하게 요청드립니다."

환자는 골수검사시 의사의 행위료에 포함되기 때문에 의료기관이 별도로 비용을 청구할 수 없는 구형 검사바늘 대신 급여기준에 없는 신형 골수검사바늘을 쓸 수 있도록 호소하고 있다. 구형바늘은 너무도 고통스러워 본인이 스스로 비용을 부담해서라도 고통스럽지 않은 신형 골수검사바늘을 쓸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또 다른 환자들의 사연 : "가장 큰 피해는 백혈병 환자들이 입고 있다. 가장 단편적이고 직접적인 고충의 예로 항암치료 이후 쉽게 발생되는 구강염을 들 수 있다. 과거 구강염으로 인해 입안 전체가 헐어 식사를 못하게 되었을 때 체력이나 영양보충을 위해 영양제 주사를 지속적으로 처방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행 규정대로만 처방받게 됨으로써 구강염이 장기간 지속될 때에는 그나마 밥도 먹을 수 없어 체력저하 및 영양결핍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중략>살기 위해 사경을 헤매며 치료를 받으려 하는데도 적극적인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은 매우 부조리하다."

"너무나도 분통하고 당황스럽다. 이게 누구를 위한 법인가? 환자가 자신의 몸에 맞다고 생각되는 약제를 처방받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도대체 어떤 목적에서인가?"

법원이 끝내 임의비급여 진료비 환급처분을 정당하다고 한다면 의료기관은 어쩔 수 없이 급여기준을 지키는 쪽으로 선회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럼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는 환자들의 고통과 절망은 어찌 해야 한단 말인가?

▲"치료비용을 환자 측이 부담하게 하는 것은 건강보험제도의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다"

건강보험이 급여혜택을 주지 않는 것은 재정부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환자 측이 비용을 부담하는 건 오히려 보험재정을 덜 쓰는 것인데, 그게 왜 건강보험제도의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인지 납득할 수 없다.

순전히 보험재정의 형편 때문이며, 건강보험제도의 존속 여부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정부는 보험재정의 확충에 따라 급여혜택을 넓혀나가면 될 일이고, 그 이전에는 환자가 원할 경우 본인 부담으로 치료를 받도록 해야 한다.

▲"치료행위는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갖춘 요양기관이 질병 등에 관하여 전문 지식이 없는데다가 질병 등으로 곤궁한 상태에 있는 불특정 다수자인 환자를 상대로 하는 것이므로 치료행위의 내용이나 그 비용 부담 등에 관하여 당사자의 계약에 의하여 정하게 할 수는 없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존재하는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사적 계약에 국가의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 논리대로라면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하는 모든 영역에 다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

이를테면 자동차 운전자가 자신의 차에 뭔가 이상이 있다고 느껴 정비소를 찾았을 때 정비소에서 값비싼 부품을 교체해야만 한다고 하면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설혹 정비소가 속였다 해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전문성이 부족하므로 그걸 알 재간이 없다.

따라서 마땅히 자동차 정비업소의 영업활동에도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다. 왜 유독 의료에만 국가의 개입이 정당화돼야 한단 말인가? 더욱이 그로인해 환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말이다.

▲"각각의 개별 진료행위나 약제 또는 치료 재료의 사용에 대하여 요양급여대상 여부를 확정하고 그 비용을 산정하는 현 건강보험체계에서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필요한 치료행위'와 일반 치료행위를 구별하기가 용이하지 않으며, 관계 법령은 아래와 같이 새로운 진료행위 등이나 당초 허가사항을 초과하는 의약품의 사용 등에 있어서도 요양기관이 공단 등으로부터 그 비용을 보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보건복지가족부장관의 허가를 받아 보험공단이나 환자 측으로부터 비용을 보전 받을 수 있도록 돼 있기는 하다. 하지만 실제 복지부장관의 허가를 받는 게 사실상 거의 어렵고, 가능하다 하더라도 몇 년이 걸릴 지 알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당장 환자는 고통 받고 있고,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필요한 치료행위'와 일반 치료행위를 구별하기가 용이하지 않다고 했는데, 여기에는 의사가 환자를 부도덕하게 속일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의사를 믿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환자를 맡긴단 말인가?

의사를 믿을 수 없다면 시장의 원리에 맡기면 된다. 하지만 우리의 건강보험제도는 국가의 강제에 의해 시장기능이 작동치 못하도록 해놓고 있다. 의료비용은 물론 진료의 내용까지 통제(규격화 할 수 없는 진료의 규격화)하는 것이다. 이 체제를 유지하려면 의사를 믿어야 하고, 의사를 믿지 않으려거든 시장기능이 작동케 하는 것이 순리다.

▲"요양급여기준은 의약계 전문가의 의견 등을 반영하여 마련한 것이어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얼핏 생각하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보험재정을 우선시하여 만든 급여기준이 의학적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건강보험제도를 엄격하게 유지함으로 인한 공익은 그로 인해 침해되는 요양기관의 이익이나 권리보다 크다"

환자가 최선의 진료를 받지 못해 생명을 잃는다면 공익에 부합하는 게 아니다. 재판부가 말한 '요양기관의 이익이나 권리'는 곧 '환자의 이익이나 권리'다. 재판부는 그걸 혼동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공익이란 결국 건강보험재정이란 얘긴데,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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