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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김원장의 좌충우돌 원격진료 무작정 나서보기

coverstory 김원장의 좌충우돌 원격진료 무작정 나서보기

  • 최승원 기자 choisw@kma.org
  • 승인 2009.09.18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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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2010년 X월 X일. 목포에서 개원 중인 50대 중반의 김진료 원장은 시청에 들러 '원격진료 신고서'를 접수했다. 김 원장의 접수번호는 '1번'.

결심한 것은 즉시 뿌리를 뽑아야 하는 김 원장의 화끈한 성격은 식전 댓바람부터 부지런을 떨게 했다.

원격진료를 하기 위해 갖춰야할 장비나 특별한 자격이 없고 시·군·구청에 신고만 하면 원격진료를 할 수 있도록 한 보건복지가족부의 방침으로 접수절차는 비교적 간단했다.

복지부가 원격진료를 하기위해 반드시 갖춰야 한다고 명시한 장비라고 해봐야 인터넷을 통해 영상을 보낼 수 있는 웹캠코더가 전부다. 제도 마련 당시 원격진료실을 진료실 안에 별도로 둬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지만 대한의사협회가 반대해 무산됐다.

사실 김 원장은 원격진료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전남대병원에서 인턴으로 환자를 보기 시작한 이래 30여년 동안 환자는 언제나 그의 코앞에 있었다. 그런 김 원장에게 손바닥만한 모니터를 통해 환자를 봐야한다는 것은 도무지 탐탁치가 않았다.

불과 3~4일 전만해도 "과연 그런 식의 진료가 가당키나 한 것이냐"며 동료 선생들과 술자리에서 혀를 끌끌차던 그였다.

이처럼 원격진료에 부정적이었던 김 원장이 진료 신고서를 넣게 된 데에는 비금도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단골환자 박원격씨의 간절한 부탁 때문이었다.

60대 초반의 박 씨가 김 원장을 처음 찾아 온 것은 2년 전 초겨울. 박 씨의 혈압은 150/100. 일주일 동안 3차례나 혈압을 측정했지만 혈압은 내려가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총콜레스테롤 수치 210mg/dL, LDL콜레스테롤 98mg/dL, 혈당 105mg/dL로 나쁘지 않았다는 것. 노바스크 5mg을 처방하고 혈압을 재자 목표혈압치인 130/90까지 혈압이 떨어졌다.

부지런하기로는 비금도에서 둘째가라면 울고 갈 박 씨답게 그는 꾸준한 운동과 식단관리를 하며 2년 동안 3개월에 한번씩 김 원장을 찾아와 처방전을 받아가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근면한 박 씨라도 비금도에서 2시간 30분 동안 배를 타고 목포항에 도착해 136번 시내버스를 타고 30분이나 달려 김 원장을 찾는 것은 하루를 온전히 잡아먹는 번거로운 일이다. 특히 휴가시즌, 일손이 모자란 식당을 하루종일 비워두는 것은 사실상 '미션 임파서블'.

투자비 10만원으로 원격진료 나서다

원격진료를 받고 싶다는 말을 먼저 꺼낸 것은 박 씨였다. 박 씨의 간곡한 부탁에 김 원장은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박 씨의 상태가 의학적으로 안정적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의사단체가 만든 원격진료 중계사이트 '닥터ON'에 가입했다. '닥터ON'은 원격지 의사와 원격진료를 받을 환자를 인터넷망으로 연결시켜 주는 프로그램이다.

김 원장과 박씨에게 회원가입 축하메시지를 보낸 '닥터ON'은 원격진료 위한 각각의 준비물을 꼼꼼히 챙겨 준다.

우선 박 씨는 자신의 혈압과 혈당수치를 체크해 김 원장에게 보낼 원격의료 디바이스를 구입하든지 임대해야 한다. 물론 비금보건지소에 가면 전라남도가 설치한 수천만원짜리 디바이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이 디바이스는 혈압이나 체온 측정은 물론 심전도와 X레이 검진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혈압측정 정도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30~80만원대의 재택용 디바이스들을 구입하면 된다. 만일 구입이 부담스럽다면 의사단체가 만든 임대업체에서 디바이스를 임대해도 된다. 박 씨는 몇개월간 디바이스를 임대하기로 했다. 원격진료가 만족스러우면 30만원대의 디바이스를 사기로 했다.

디바이스 임대료는 한달에 1만원 정도. 비금도 항구에서 목포까지 왕복배삯이 1만 4400원. 항구에서 버스를 이용할 경우 왕복 2400원이 더 든다. 목포까지 김 원장을 찾아가느라 걸린 시간까지 고려하면 디바이스 임대료를 쳐도 남는 장사라는 생각이다. '닥터ON'의 임대 디바이스는 박 씨 아들의 컴퓨터에 연결됐다.

김 원장 역시 구비해야 할 품목을 챙겼다. 컴퓨터는 진료실에서 쓰는 것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지만 박 씨와 화상통화를 위해 10만원을 주고 웹캠은 구입했다. 그게 다였다.

김 원장은 박 씨와 예약한 시간 보다 10여분 일찍 '닥터ON'에 로그인을 하고 들어갔다. 하루 단위로 체크된 박 씨의 혈압과 혈당수치가 이미 들어와 있었다. 10여분간 데이터를 꼼꼼히 확인한 후 박 씨와 화상진료에 들어갔다. 진료 후 약 처방은 전자처방전 형태로 닥터ON 홈페이지에 올려놓았다.

박 씨는 비금도에 하나뿐인 '제일좋아 약국'에 들러 약사에게 전자처방전 접수번호를 불러주고 약을 받아갔다. 월말에 김 원장은 박 씨의 진료차트에 '원격진료'를 표시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보냈다.

박 씨는 벽오지 지역 주민으로 분류됐기 때문에 김 원장은 대면진료와 같은 급여청구액을 건강보험공단에서 받았다. 박 씨의 본인부담금은 신안군이 낸다는 말을 김 원장은 얼핏 들었다.

벽오지 진료 넘어 일반 진료까지 넘보다

10만원짜리 웹캠을 사서 박원격씨만 보려하니 왠지 아까운 마음에 치를 떨던 짠돌이 김 원장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보건복지가족부가 벽오지 주민들만 대상으로 하던 원격진료를 일반 환자의 재진까지 확대한다는 것.

기특하게도 원격진료를 원하는 환자를 보기 위해 웹캠과 컴퓨터를 구입하면 100만원을 지원하겠다며 정부가 나섰다. 정부의 지원금은 모두 '건강서비스선진화기금'에서 나온 것. 의협은 정부의 'U-Health 활성화 법제도 개선' 회의에서 건강서비스선진화기금 마련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이 받아 들여져 가능해진 일이다.

기회다 싶어 김 원장은 새로 컴퓨터 한대를 장만했다. 물론 지원금으로(올레!!!). 의원 입구에 '원격진료합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였다가 너무 밋밋하다는 간호사들의 성화에 안내문 카피를 바꾸기도 했다. '원격진료 받고 엣지있는 삶의 여유를 만끽하자'.

이제 모든 준비가 다 됐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바로 일반 환자의 원격진료비를 얼마로 할 것인가 남은 것. 어떻게 보면 원격진료 성공 여부의 핵심이다. 정부는 벽오지가 아닌 일반인 원격진료의 경우 비급여하기로 결정했다. 가격은 온전히 의사가 알아서 받으면 된다.

김 원장은 열심히 주판알을 튕겨봤다. 원격진료의 적정가격은 재진 대면진료를 받을 경우 지불해야 하는 환자 본인부담금 1500원과 청구액 1만원(만성관리료 포함)을 합친 최소한 1만 1500원 이상이 돼야 한다. 소심한 김 원장은 적정한 원격진료비를 얼마로 할 것인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1만 5000원을 받기로 했다.

1500원을 내면 대면진료를 볼 수 있는 환자가 거의 10배가 넘는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원격진료를 보려할까하는 의구심 때문에 우선은 겸손(?)한 가격을 책정했다. 추후 원격진료를 받고자 하는 환자의 규모와 지불의사를 봐서 가격을 높인다는 계획도 세웠다.

전국구 의원에 VIP 원격진료 전문의원 탄생

서울의 유명 의대에서 순환기 내과 교수를 지내다 최근 개원한 최고수 원장은 원격진료가 일반인에게 까지 확대되자 새로운 개념의 수익모델을 생각했다. 바로 원격진료 전문의원을 운영하는 것.

유명 의대에서 내과 교수를 지낸 이력을 전면에 내세워 전국을 무대로 누벼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최 원장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마케팅'. 최 원장은 원격진료를 하고자하는 의사와 원격진료를 받고자하는 환자들을 웹사이트에서 맺어주는 '아파요닷컴'에 먼저 등록하려 했지만 '아파요닷컴'이 환자유인 시비에 말려 소송이 걸리자 포기했다.

'아파요닷컴'은 원격진료를 원하는 의사와 환자를 웹상에서 연결해주는 것이 왜 불법이냐며 대응에 나섰다. 반대쪽은 '아파요닷컴'이 의사의 경력과 진료내역을 소개하는 광고를 띠우고 환자들이 클릭하게 만들어 소개료를 챙기는 것은 환자유인을 금지하는 의료법 위반이라고 맞섰다.

결국 최 원장은 '아파요닷컴' 가입을 포기하고 의협 의료광고심의위원회로부터 이력과 원격진료 서비스 종류 등을 실은 의료광고를 심의받아 일간지에 광고를 실었다.

최 원장은 원격진료를 받고자 하는 환자가 많아지면 고용의사를 두고 진료를 하려 했지만 의협과 복지부가 합의한 원격진료 3원칙에 묶여 포기했다. 의협과 복지부는 '동일 상병'으로 '동일 의원'에서 '동일 의사'에게 재진을 받을 경우에만 원격진료를 비급여로 허용키로 했다.

결국 현상태로라면 아무리 유명한 의사라도 의사 한명이 볼 수 있는 물리적인 환자 수를 쉽게 넘지는 못할 것이란 전망이다.

그럼 최고수 원장은 원격진료계의 '최고수'가 될 수 없는 걸까? 꼭 그렇치만도 않다. 일단 원격진료는 예약시스템으로 돌아가게 돼 있다. 대면진료실에서 처럼 환자가 한꺼번에 몰렸다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상황을 어느정도 피할 수 있다. 최 원장은 원격진료 환자예약을 1분 간격으로 촘촘하게 만들었다.

보통 진료실에서 보던 환자보다 20% 많은 환자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최 원장이 노리는 또 다른 수익모델은 VIP 원격진료. 보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진료를 받고 싶은 VIP 고객을 확보해 전반적인 원격 건강관리서비스를 제공하는 컨셉이다. 이들에게는 한번 원격진료에 10만원씩을 청구할 계획이다.

최 원장은 내일 아침 구청이 문을 열자마자 달려가서 원격진료 신고서를 제출할 생각에 잠이 오질 않았다. "겨울밤은 깊어만 가고 잠은 오지 않네~♪"

원격진료 허용 그 이후를 전망하며

김진료·최고수 원장과 박원격씨의 사례는 현재 의협의 원격진료에 대한 의견을 토대로 한 시뮬레이션이다.

의협은 재진환자에 한해 동일한 질병으로 동일한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동일한 의사에게만 원격진료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격진료를 하기위한 신청절차나 장비, 인력기준은 확정된 것이 없지만 시뮬레이션에 제시된 정도에서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원격진료 장비가격은 대단히 유동적이다. 관련 업계에서도 원격진료기가 건강관련서비스와 연계된 고가 장비 위주의 시장으로 흐를지 재택 원격진료기 정도의 저가 재택장비 위주로 갈지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재택장비 위주로 시장이 흐르면 속속 다운된 가격의 저가 장비가 선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원격진료 시스템으로 거론된 '닥터ON'·'아파요닷컴'·'제일좋은 약국' 등은 모두 만들어진 이름이다.

19일 현재 명확히 확정된 원격진료안이 없기 때문에 위 시뮬레이션은 말그대로 시뮬레이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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